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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섭섭하다...

by 풀빛달빛 2022. 5. 7.

3월 말 아니면 4월 초였을거다.
더 바빠지기 전 시간날때, 온갖 농기계와 잡동사니로 너저분한 창고를 정리하러 들어갔다 갑자기 선반의 안쪽 구석에서 포로롱~~ 작은새 한마리가 나타나 내 머리를 살짝 스치고 날아올라 깜짝 놀랐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짚히는 생각이 있어 들여다보니 아니나다를까 나뭇가지와 깃털, 지푸라기 등으로 얼기설기 지은 조그만 새둥지가 보였고 그 안에 반짝반짝 빛나는 조그마한 새알이 몇개나 들어있는게 아닌가...!
내가 아주 잠깐 들여다보는 동안 방금 나를 스치고 날아간 부모새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마구마구 째려보며 짹짹짹짹('너 그거 건들기만 해봐, 내가 가만안둬!') 아주 난리다!!!
임대차 계약도 없었고 집세도 한푼 안냈으면서 집주인(우리)의 허락도 없이 언제 들어와 눌러앉아서는 살짝 놀란 나에게 되려 이 야단이라니~~~^^;;;;
얘네들이 너무 귀여워서 더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부모새를 더이상 불안하게 만들면 안되기에 집주인인 내가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하며 얼른 자리를 피해줄 수 밖에.
그 뒤로 아주 가끔, 너무 궁금해서 살짝살짝 들여다봤는데 처음 한두번은 놀라 포로롱 날아가던 부모새가 그 뒤로 몇번 더 나와 눈을 마주친 이후로는 아예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또록또록 눈동자를 굴리기까지 하기에('그래서 뭐 어쩔건데?우리 못 나가!!!') 저녁 식탁에서 남편한테 얘네들이 얼마나 능청스럽고 붙임성 좋은지 모르겠다며 한껏 들떠 떠들어대었다. ^0^
그러다 얼마후에 알이 아기새로 변하는 기적-내 눈앞에서 일어난 이 놀라운 사건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 일어났고 아주 살짝 들리는 내 인기척에도 아기새들은 입을 위로 한껏 쳐들고 짝짝 벌리는데 하, 심쿵!!!...니네들 너무 예쁘고 귀여운거아냐ㅠㅠ
세차게 봄비 뿌리던 날, 한두마리도 아니고 넷다섯마리는 되는 것 같던데 안그래도 먹이 물어 나르느라 지쳤을 부모새가 이 세찬 빗줄기 속에서 먹이를 제대로 구해오기 힘들겠다 싶어 걱정하다가 문득, 예전에 TV프로그램 동물농장에서 어미새로부터 먹이 받아먹는 순서에서 한번 쳐진 아기새가 그 뒤로도 계속 처져 결국 자연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잘게 자른 쇠고기를 몇번 멕여주니 다른 형제 새들과 마찬가지로 튼튼해져 어미새로부터 제대로 먹이를 받아먹던 장면이 기억났다.
나는 바로 그 먼거리를 내달려 한우(나는 남편생일이나 내 생일에도 한우를 사본 적이 없다!)를 조금 사와 잘게 다져서 새둥지로 갔더니 부모새는 보이지않고 아기새들이 입을 위로 한껏 쳐들고 짝짝 벌리는데, 하 귀여운 녀석들! ㅠㅠ 배고팠을 녀석들을 위해 얼른 나무젓가락으로 한 녀석씩 돌아가며 입 안에 넣어줬더니 꿀꺽꿀꺽 얼마나 잘 받아먹는지, 에구 많이 배고팠나보다...ㅠㅠ
그 뒤로 한번 더 비오는 날에 고기를 줬고 아기새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갔는데 며칠 전에 봤을 때는 그야말로 새둥지가 터지기 일보직전일 정도라 심히 염려스러울 지경인데 인석들은 천진무구한 눈빛으로 말똥말똥 나를 바라보며 놀라지도 않는다. 그때서야 자세하게 보니 다섯마리였다.
그리고 어제, 사과밭에서 열매솎기하고 저녁무렵 돌아와 요즘 내 하루일과의 마무리로 얘네들 오늘 하루도 잘 놀았나, 그새 얼마나 컸나, 새둥지는 안터지고 무사한가 확인하러 새둥지로 가봤더니....
텅...!!!
새둥지가 텅 비었다!
순간 너무 놀라 멍해졌다!
어떻게 된거지...
무슨 일이 일어났나...
들고양이나 다른 어떤 짐승의 습격을 받은 걸까...
정신없이 뛰쳐나와 남편한테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힘든 말들을 횡설수설, 악을 쓰며 난리를 치는데 남편이 어떻게 그 이상한 외계어를 알아들었는지
"그럼 오늘이 둥지를 떠나는 첫 비행이겠지. 주변을 둘러봐봐! 근처에서 날고 있을걸, 한번에 멀리 못 나니까"
그러고보니까 조금 전 사과밭에서 내려올 때부터 집 주변 풀숲에서 짹짹짹 새소리가 유난히 시끄러웠던 게 퍼뜩 떠올랐다.
"저봐봐, 저기 저기! 저기 있네, 쟤네들. 대추나무 위에서 짹짹하는 애가 어미새인 것 같고 저기 떨어져 풀숲에 여럿 애들 보이지, 어미새가 여기 대추나무까지 날아올라 오라고 저렇게 짹짹거리는 거잖아"
남편이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키는대로 바라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부모새로 보이는 한 마리가 대추나무 위에서 쉼없이 짹짹짹 하는데 그 시선을 따라가보니 얼마 떨어진 아래 풀숲에 아주 조그만 애들이 여러마리 옹기종기 모여 종종종 뛰어다니거나 조금씩 날아 움직이는 게 보였다!
아, 다행이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이어 섭섭한 마음이 아주 많이 들어차더라... ㅠㅠ
우리 없을 때 말없이 떠나서 너무 섭섭한 마음이 크지만, 너희들의 첫 비행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축하할거야! 그 단단한 알 껍질을 깨고 이 무자비한 세상으로 용감하게 나와준 것이 첫번째 기적이라면 우리는 지금, 그 힘찬 날갯짓으로 세상을 날아오르는 너희의 두번째 눈부신 기적을 마주하고 있다!
"힘차게 세상을 날아라, 오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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