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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무서워...

by 풀빛달빛 2022. 9. 6.

지글지글 기름이 끓는 프라이팬 위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부추전, 갑자기 더 세차게 쏟아지는 빗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깐 멈칫했던 내 손이 재빠르게 뒤집어낸다.
"할수없지... 우리가 할일은 다 해놨으니 태풍이 큰 피해 끼치지않고 얌전히 지나가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소주잔을 입으로 털어넣고 부추전을 한점 베어물며 남편은 말한다.
걱정하는 티를 내지않으려 했지만 내가 너무 서툴러 누구라도 내 불안한 행동에서 온갖 근심을 읽어낼 게 뻔했다.
지금 창밖에는 세찬 비바람을 몰고오는 힌남노가 다가오고 있다... 나는, 태풍이 너무 무섭다!
몇년전 태풍으로 인해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진입로가 불어난 계곡물이 넘치면서 완전히 무너져내렸고 길 위에 세워진 전봇대까지 계곡으로 쓸려가면서 며칠동안 전기와 물이 끊겼으며 집 옆 축대가 무너지면서 토사가 마당으로 밀려들어 저온저장고와 하우스, 마당이 묻혔고 배수가 되지 않아 순식간에 물이 차오르면서 집까지 침수될 위기의 순간에 남편과 둘이 그 빗구덩이 속으로 정신없이 뛰어나가 미친듯이 물을 퍼냈기에 침수는 가까스로 모면했다. 게다가 이제 막 수확하기 시작한 오미자의 울타리가 쓰러지면서 오미자 덩쿨이 그대로 진흙탕에 쳐박혔고 밭둑이 무너져내리면서 사과나무들이 토사에 묻히는 등 너무 큰 피해를 입어서 자연재해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뼈저리게 겪었기에 나는 이번 태풍 힌남노 앞에서 이렇게나 덜덜 떨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힌남노는 지금까지 태풍 중에서 가장 강력한 태풍이라니... 생각만으로도 나는 덜덜 떨린다.
며칠동안 우리는, 사과나무에 지줏대를 대고 가지를 묶어주고 울타리를 따라 방풍망을 둘러주는 등 며칠째 내리는 비 속에서도 쉬지않고 태풍대비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했다.


며칠동안 비 속에서 일했더니 손과 발이 물에 퉁퉁 불었고 우비를 입었어도 젖는 부분이 있다보니 몸살감기가 오려는지 으슬으슬 몸이 떨려오고 고단하기 이를 데 없지만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지금껏 마음편히 앉아있지를 못하고 뭐에 홀린듯 계속 돌아다니며 움직이고 있다.
마음이 불안한 까닭이다...
'참, 남편이 아욱국 먹고 싶댔지!'
아욱을 뜯고 다듬어 아욱된장국을 한솥 끓여놓는다.
'태풍이 지나가면 정신없이 바쁠테니까 밑반찬을 좀 만들어놔야겠네'
애호박볶음과 멸치볶음을 만들고 가지무침, 오이무침을 만든다.
'태풍이 지나가면 정신없이 바쁠테니까......'
미리 화장실과 방 청소를 하고
'테풍이 지나가면 정신없이 바쁠테니까......'
미리미리 옷정리를 해놓고...
'비가 오니까 저녁에는 부추전을 해줘야겠네'
부추를 한가득 뜯어와 다듬고 새우와 홍합, 청양고추는 다지고 양파를 채썰어 부추전 반죽을 만든다.
내가 불안하게 계속 움직이니까 남편은 한숨을 쉰다.
"그만 신경써. 걱정한다고 될일도 아닌데... 그렇게 신경쓰니까 스트레스로 장염걸리는거야"
나는 며칠째 먹기만하면 배가 아파와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죽죽....ㅠㅠ
장염뿐만이 아니라 환절기가 되면서 가을 꽃가루로 인한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흐르고 코막힘으로 숨쉬기가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밤에 잠도 곤히 들지 못하고 자주 깨곤 한다.
한마디로 요즘 심신상태가 최악이다...ㅠㅠ
온몸이 으슬으슬, 욱신거리고 눈꺼플은 무겁고 너무 피곤한데, 쉬고 싶은데, 좀 누워있고 싶은데... 마음이 너무 불안하고 걱정되어 몸이 쉬어지지를 않는다.
그래서 계속, 무엇이든 일거리를 만들어내며 이렇게 허둥대고 있는......

사과밭에서 일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찍은 키다리 해바라기 - 5월 적과작업을 끝내고 심었기에 많이 늦어져서 이제서야 꽃봉오리 맺은 해바라기들인데, 채 꽃피워보지도 못하고  이번 태풍으로 쓰러질까봐 가여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