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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8월, 너무나 바쁘게 지나간 여름..

by 풀빛달빛 2019. 8. 27.

작년 12월 말에 올해 계획을 세울 때 

8월은 나에게 주는 달이었다!

몇년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 스스로에게 주는 상으로

8월에는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돈과 시간이 부족해 

미뤄왔던 일들을 하겠다고 단단히 계획을 세워뒀다.

왜 하필 제일 더운 8월이냐구?

슬프게도 8월이 사과와 오미자 농사를 하는 나한테는 

제일 한가한 시간이므로

온갖 꽃이 만발한 따뜻한 봄이나 

붉은 단풍과 선선한 바람이 좋은 가을에는 

꿈도 꿀 수 없기 때문이다.


8월에는 

건강검진을 받고

가족사진을 찍고

연극공연과 미술전시회를 보고

남도 섬을 여행하고

틈틈이 제목을 적어놨던 책들을 사서 읽겠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정말 불행하게도

우리 부부는 8월을 너무나 안타깝게 보냈고 

지금도 그러하다...


올해 초, 나는 새로운 시도를 결심했다.

지금 실천하고 있는 최소한의 방제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완전 초저방제를 해보자!


일반적으로 사과농가들이 짧게는 10일,12일에서 

길게는12일,15일 주기로 방제를 하다가 

장마가 시작되는 6월 중, 말부터 7월 말, 8월 초까지는 

7일정도 주기로 방제를 한다.

물론 내가 사과농가 전부를 조사한 것이 아니므로 

이것은 일반적인 방제주기이며

농가마다 조금씩 다를 수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20일 주기로 방제를 하다가 

장마때는 15일 주기로 방제했는데 

(물론 방제하는 날 전후로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등의 기상조건이 맞지 않으면 조금씩 달라진다)

올해는 23일 주기로 방제를 시도했다.


그런데 올해 여름은 유난히 기상여건이 좋지 않았다.

고온기가 별로 없었고 구름 많고 잦은 비가 오는 등 

다습한 날의 연속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초저방제를 고집하다가 

7월 중순부터 그만 사과나무 밭 전체에 심각한 병이 발생했다. 

갈반(갈색무늬병)이라고 명명지어진, 

사과나뭇잎에 균이 침투되어 잎을 노랗게 만들어 

낙엽지게 만드는 무서운 병이다.

사과나무와 사과를 키우고 영양을 공급해야할 나뭇잎이 

낙엽지면서 떨어져버리니

이 병이 계속 진행되면 더이상 사과를 키울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급한대로 

우선 사과나무의 짐을 최대한 덜어줘서

에너지 소비를 막기 위해 잘 크고 있던 멀쩡한 사과들을 

정말 미친듯이 정신없이 따내었다.

8월 내내, 매일 아침 일찍부터 어둑어둑해지도록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나무상태를 살피고

나무상태에 따라 사과들을 따내기를 쉬임없이 해왔다.

사과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고 병도 없지만

결국 이 사과를 키워내는 역할을 하는 잎들이 낙엽지니

나무상태에 따라 최소한의 양만 남겨두고 따내고

몇몇 나무의 경우에는 단 한개의 사과도 남겨놓지 않고 전부 따냈다.


이렇게 생각만으로도 기분좋았던 나의 계획과는 전혀 다르게

여름은 정말 너무나 바쁘고 정신없게 그리고

병과 싸우며 힘겨워하는 사과나무를 지켜보면서

정말 아프게 보내고 있다.

무슨 반찬을 해서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세수도 하지 못하고 그냥 골아떨어진 날들이 수두룩했던 것 같다...

그러다 아침이면 밭으로 달려가 나무 상태를 확인하고 

한숨을 지으며 근심에 쌓여 또다시 사다리에 오르고

때때로 사과나무의 상태와 개선에 대해 남편과 의견을 나누다가 

언쟁에 휘말리기도 하면서...


8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부터 아침저녁으로 볼에 와 닿는 바람이 선선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8월이, 여름이 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름의 끝자락이 되니 잦던 비도 멈추면서 파란 하늘을 들어내고

산골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니 사과나무의 병도 잦아들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나의 한숨도 잦아들었고

오늘 아침은 울음과 웃음이 뒤섞여 나왔다.

이른 새벽, 아침이슬에 흠뻑 젖어 있는 사과밭에서

웃다가 울다가 다시 웃음짓는 우리 부부.


아, 감사하다.

사과나무에게, 자연에, 맑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에, 

절망스러운 매 순간 함께 일하며 겪어낸 남편에게 감사하다!


물론 우리의 일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완전히 해결된 것도 아니고

하지만 이젠 슬픔과 쓰린 마음을 털어내고

좀 더 여유로운 눈빛으로, 

매일 아침 여전히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상태를 살피며 

사과를 더 따내거나 좀 더 지켜보거나 하겠지.


여름의 끝자락, 산골의 8월이 이렇게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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