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동네도 다 그런지 모르겠으나
우리 면은 동네마다 마을회관에서 어버이날행사라는 것을 한다.
행사라고 해봤자 특별한 것은 없고 그냥 동네 노인회에서 돈을 내면
부녀회장을 중심으로 젊은 여자들(?)이 뻔한 음식(?)을 준비해서
동네 사람들이 다같이 둘러앉아 시끌벅적 먹고 마시고 떠드는 것.
처음 이곳으로 이사 온 때가 5월 중순경이었으니 첫해에는 이런 행사를 알지 못했고
그 다음해부터 나는 지금까지 쭉 불려가서 일하는 젊은 여자사람(?)이 되었다...
내가 이 행사에서 일하기 시작한 해부터 몇년 동안은 나 말고도
젊은 여자들이 몇 명 더 있어서
우리는 주방에서 쉬지 않고 설거지하고
음식나르고 치우면서 두런두런 작은 소리로 불평을 좀 하며 위안을 삼기도 했다.
그런데 한 두 해 지나면서 우리 동네 젊은 여자들이 하나, 둘씩 떠나갔다.
가장 젊은 여자였던 그녀는 시골에서 애보고 살림하는 일이 지긋지긋하다며
시내로 아르바이트 일자리 구해서 다니다가 만난 남자랑 눈이 맞아
결국 남편과 아이들, 살던 집... 전부를 던져버리고 나갔고
그 다음엔 우리보다 조금 일찍 귀농해서 들어온 내 또래 젊은 부부는
이런저런 일들로 동네 사람들, 시청, 면사무소 공무원들과 자주 싸우더니
어느 날 자기 필요한 것만 챙겨갖고 나머지 쓰레기 등 쓸모없는 것들은
그동안 빌려쓰던 집에 그냥 버려둔 채 말도 없이 가버렸다.
그리고 그 몇 년 후에 이장 아내였던 젊은 언니는
그 언니 말에 의하면 남편의 바람기와 시어머니와 불화를 견디다 못해
결국 옷가지만 챙겨서 나가 버렸다...
그렇게 동네에 몇 안되는 젊은 여자들이 떠나고 결국 나만 남은 셈.
처음 어버이날 행사 준비하러 갔던 날,
이장 아내 언니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가는데
동네 사람들이 마치 동물원의 동물을 구경하듯이 나한테 시선을 고정한 채
한마디씩 수군거리던 그러나 내 귀에 다 들려왔던 그 날을 여태 잊지 못하고 있다.
'저렇게 젊은 여자가 이 시골구석까지 뭐하러 왔대?...'
'하이고 이 시골구석에서 누구 보라고 화장은 뭔놈의 화장을 쥐잡아 뜯어먹은 것마냥 하고 다녀?...'
'애가 없다잖어, 애를 안낳았대...'
'왜? 왜 여자가 애를 안 낳아? 애도 못 낳는대?...'
'하이고 요즘 젊은 것들은 몸매 망가진다고 애도 안 낳는대잖어...'
'남자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는데 후천가? 남자가 돈이 있었나보네...'
'어쨋건 우리 동네에 일꾼 하나 들어왔으니 잘됐지...'
'일을 잘 해야 일꾼이지, 몸매 망가질까봐 애도 안 낳는데 일은 잘 할까?...'
'다리가 배배 말라서 일은 커녕, 집안에서 화장만 하고 자빠져 있겠지...'
......
동네사람들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나를,
그 날 처음 본 나를 왜 그렇게 못된 말과 심보로 대했는지
요즘은 사실 이해가 된다.
이곳은 정말 산골오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죽도록 농삿일에 매달린다.
산비탈을 깎아서 만든 밭들과 얼마 안되는 논을 일궈
대식구를 먹여 살리고 자식들을 가르치다보니
정말 죽도록 쉬지 않고 일하다가 거의 유일하게 이 날 하루만
마음껏 먹고 마시고 떠들어댈 수 있었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 여자의 몸으로 고된 농삿일에
매서운 시집살이 겪으며 가난해빠진 살림살이 꾸리고 애들 키워내랴...
온갖 쌓였던 스트레스를 이 때 모여서
무슨 말이든 떠들어대며 풀었던 것 같다.
새로 들어온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비교에서 오는 부러움과 질투, 외부에서 들어온 도시인에 대해 갖는 막연한 적개심 등
여러 복잡한 심경이었을 것이리라 지금은 이해가 된다,
여기서 이들과 십년 넘게 살다보니...
지금은 어느 누구도 나한테 그런 이상한 수군거림을 하지 않는다.
오다가다 만나면 반갑게 말을 걸고 남는 씨앗이나 모종이 있으면 선뜻 나눠주고
오늘처럼 어버이날 행사로 마을회관에서 음식 차려내고 설거지하고 있으면
수고한다 말 한마디 건네기도 하고
갈 때는 신랑하고 먹으라며 남은 국과 떡을 조금 싸주기도 한다.
나도 지금은 이들과 스스럼없이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것은 물론.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그 날을 잊지 못하고
이들, 우리 동네 사람들이라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이들과 일정 거리를 지키고 있다.
여전히 어버이날과 겨울 동회때면 마을회관에 가서 종일 일을 하고
오다가다 만나면 웃으며 인사하고 안부를 묻지만,
겨울이면 마을회관 냉장고에 사과를 여러번 채워놓고도
집집마다 한 꾸러미씩 돌리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이 정도 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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